도망친 한국 코피노 아빠들 “SNS에 얼굴 올리자 전화왔다”… 필리핀서 ‘연락 폭주’

👶 코피노란 누구인가
‘코피노(Kopino)’는 한국인(Korean) 남성과 필리핀인(Filipino)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뜻하는 말이다.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나 사업, 출장 중 현지 여성과의 관계로 아이가 태어나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뒤 연락을 끊거나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해 왔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필리핀에서 ‘싱글맘’의 품에 남겨진 채로 살아가며, 출생신고조차 되지 못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얼굴 공개 후 달라진 상황
최근 시민단체 '양육비를 해결하는 사람들’(옛 배드파더스)이 SNS를 통해 ‘코피노 아빠’들의 얼굴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수년간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체의 구본창 활동가는 “그동안 완전히 잠적했던 일부 아빠들이 SNS에 얼굴이 올라간 뒤 직접 연락을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몇 년 전 아이를 남기고 떠났던 아버지가 필리핀에 있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례도 보고됐다. 이처럼 얼굴 공개가 시작된 이후, ‘코피노맘(필리핀 싱글맘)’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아이의 아빠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조금씩 늘고 있다.
왜 얼굴을 공개했을까
구본창 씨는 “이들은 필리핀 여성과 동거하면서도 여권번호나 한국 휴대폰 번호를 숨기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단순한 법적 절차로는 아버지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고, SNS 공개가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명예훼손이 두려워도 물러설 수 없다”며 “아이의 생존과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병원비조차 내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는 절박한 사연도 덧붙였다.
법적 논란과 한계
‘얼굴 공개’ 방식은 분명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법적 논란도 피할 수 없다. 구 씨는 과거 ‘배드파더스’ 시절에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했다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법원은 “공익 목적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벌금 100만 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같은 방식의 활동을 재개했다.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굴이 공개된다고 해서 곧바로 양육비가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아빠들은 잠깐 연락만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구 씨는 “SNS에서 얼굴이 퍼지면 두려움에 연락은 하지만, 이후 책임을 지는 경우는 여전히 적다”고 털어놨다.
코피노 문제의 뿌리
이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 필리핀은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임신이 되면 대부분 출산으로 이어진다.
- 한국인 남성은 어학연수나 단기 체류 후 귀국하면서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떠나는 경우가 많다.
- 한국 정부와 필리핀 정부 사이에는 양육비 청구나 친자 확인을 위한 공식 절차가 미비하다.
그 결과, 필리핀 현지에서는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 많고, 교육과 의료 지원에서도 소외되는 아동이 늘고 있다. 실제로 현지 단체에 따르면, 일부 코피노 아동은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례들
구본창 씨가 공개한 사례 중에는 “자신의 거주지를 북한 평양이라고 속이고 사라진 한국 남성”도 있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60대 한국 남성이 10대 필리핀 여성과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은 뒤 잠적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들은 코피노 문제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윤리와 인권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의 반응과 과제
얼굴 공개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 찬성 측은 “아버지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며 공개가 아이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주장한다.
- 반대 측은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 위험이 크다”며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이를 낳고도 책임을 회피한 부모가 다시금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만드는 이 운동은, 적어도 ‘침묵의 벽’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방향
코피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 한국 정부의 제도적 지원 강화: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 강화, 국제 협력 체계 마련
- 필리핀 현지 지원 확대: 출생신고와 복지 혜택 지원
- 국제 공조 시스템 구축: 아버지의 신원 확인과 양육비 청구 절차의 국제적 표준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권리”다. 얼굴 공개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잊혀졌던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를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사회는 그 메시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마무리
한국인 아버지들이 떠나버린 뒤에도 필리핀 어머니들은 여전히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얼굴 공개라는 방법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이들은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회는 선택할 수 있다. 이제는 ‘얼굴 공개’로 끝나지 않고, 정부와 사회가 나서서 이 아이들이 당당히 이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