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연령 낮추자’… 인권위 “안 된다” 정면 반대, 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 ‘한 살’의 문제일까

처벌과 인권 사이, 지금 한국 사회가 다시 묻고 있는 질문
“만 14세 안 되면 사람을 죽여도 감옥 안 가잖아요.”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속 이 대사는 공개 당시 큰 충격을 안겼다. 극 중 13세 소년은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죄책감 없이 법의 빈틈을 조롱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드라마적 연출을 넘어, 실제 사회가 마주한 ‘촉법소년’ 논쟁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최근 들어 소년범죄가 증가하면서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교육계, 인권 단체까지 각자의 논리를 내세우며 논쟁은 확산 중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나이를 한 살 낮출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지, 그리고 그 책임을 감당할 시스템이 준비돼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촉법소년이란 무엇인가
촉법소년은 범행 당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청소년을 의미한다. 이들은 형법상 형사책임 능력이 없다고 보아 체포·구속·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신 가정법원의 판단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는다.
📌 보호처분의 한계
- 최대 수용 기간: 2년
- 전과 기록: 남지 않음
- 이후 취업·공직 진출: 제한 없음
반면 만 14세 이상 19세 미만은 ‘범죄소년’으로 분류돼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형량은 성인보다 감경된다. 단 한 살 차이로 법적 책임이 극명하게 갈리는 구조다.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 소년범죄는 늘고 있다
최근 통계는 논쟁에 불을 붙였다. 2024년 촉법소년 범죄 인원은 2만 814명으로, 2020년(9,606명)의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절도·폭력 같은 전통적 범죄뿐 아니라, 최근에는 딥페이크·사이버 범죄, 성범죄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는 “나 촉법이야”라며 경찰을 조롱하거나, 범죄 조직이 중학생을 범행에 이용하는 사례까지 거론된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범죄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면서, 제도를 ‘학습’해 악용하는 현상이 현실이 됐다는 지적이다.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세계 공통이지만,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다.
- 영국·싱가포르: 10세 미만
- 캐나다·네덜란드: 12세 미만
- 프랑스: 13세 미만
- 중국: 12세 미만(2021년 하향)
한국의 기준(만 14세 미만)은 국제적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 점이 연령 하향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
대통령 발언과 공론화, 논쟁의 재점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민 다수는 최소한 한 살은 낮춰야 한다고 본다”며 공론화를 거쳐 두 달 안에 결론을 내자고 밝혔다. 이에 따라 촉법소년 기준을 만 13세로 하향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즉각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연령 하향이 범죄 예방에 실질적 효과가 없고, 국제 인권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처벌 강화는 해답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다.
핵심 쟁점은 ‘나이’보다 ‘시스템’
전문가 토론이 이어지며 논점은 점차 이동하고 있다. 단순한 찬반을 넘어, 어떤 제도를 함께 바꿀 것인가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1. 조건 없는 하향은 위험하다
소년교도소와 전문 인력, 치료·상담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령만 낮추면, 수용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
2. 낙인 효과와 빈곤의 형벌화
범죄를 저지른 13세 중 상당수는 가정 붕괴, 학대, 빈곤 같은 환경적 요인에 놓여 있다. 이들을 형사 시스템으로 밀어 넣는 것이 문제 해결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3. ‘이중 트랙’ 대안
모든 13세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강도 같은 강력범죄는 형사 처리, 경미한 범죄는 기존 보호처분을 유지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논의된다.
4. 데이터 기반 선별
상습·고위험 소년범을 과학적으로 식별하고, 경찰·복지·교육 데이터가 연동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가 마주한 진짜 질문
결국 이 논쟁은 이렇게 귀결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그 책임을 감당할 구조를 만들어 놓았는가?”
연령을 13세로 낮추는 것은 법 조문 한 줄을 고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정 뒤에는 형사 재판을 받게 될 아이들,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안전이라는 무거운 현실이 놓여 있다.
마무리: 처벌과 보호는 함께 가야 한다
촉법소년 논쟁은 흑백의 문제가 아니다. 처벌만으로 범죄는 줄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도 악용과 피해를 방치할 수도 없다. 연령 하향 여부와 관계없이 교정 인프라 확충, 재범 방지 교육, 피해자 보호 강화는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앞으로 두 달, 정부의 결론에 전 국민의 시선이 쏠려 있다. 중요한 것은 ‘몇 살’이 아니라, 그 이후를 책임질 준비다. 아이의 미래와 사회의 안전, 두 가지를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지금 한국 사회는 진지한 답을 요구받고 있다.